[리뷰]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codemaru · May 31, 2026 · 6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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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드라마 원탑 중 하나가 나의 아저씨다. 드라마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그걸 언제 봤느냐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내 인생 가장 힘든 순간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사실 주변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때 만난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였다. 묘하게도 그 드라마는 내게 큰 위로가 됐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결해준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버티는 데 분명히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 만약 내 인생이 평안하던 시기에 이 드라마를 봤다면, 지금만큼 깊게 남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선균이 마지막에 아이유에에게 던진 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지안, 평안에 이르렀는가?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아마 나 역시 평안에 이르고 싶던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한마디가 단순한 드라마 대사가 아니라, 나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이후 나의 해방일지도 그 정도 느낌은 아니었지만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추앙을 전국구 단어로 등극시킨 신박한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최근에 그 두 드라마를 강렬하게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떴으니 제목도 너무 길어서 줄여 부르는 모자무싸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다소 장황한 드라마 제목. 처음엔 다소 황당한 전개였으나 이내 거의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 장면장면은 SNS에 바이럴 됐고, 그 과정 중에 이 세 드라마가 모두 같은 작가의 작품임을 알게 됐다. 이럴수가?! 박해영 작가.

그때 조금 놀랐다. 드라마에도 작가의 DNA라는 것이 있구나 싶었다. 인물의 결은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른데, 이상하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 무언가 결핍된 사람들, 자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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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무싸와 나의 아저씨는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어리고 예쁜 여자가 나온다. 아이유 == 고윤정, 인생을 달관한 듯한 캐릭터가 하나 있다. 스님 == 진만, 인생을 달관한 캐릭터에 빠져드는 여자가 있다. 정희 == 미란,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있다. 정희네 == 아지트.

박해영 작가는 드라마를 보고 나면 단어를 남기는 묘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나의 아저씨는 평안을, 해방일지는 추앙을, 이번 모자무싸는 목적, 착륙, 안온이 기억에 남는다. 진만은 집요하게 목적이 뭐냐고 묻고, 미란은 은아를 만나면 착륙하고, 동만과 은아는 안온함을 이야기한다.

모자무싸가 재미있었던 건 영화판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이 영화판에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 좀 벌었다고 거들먹거리며 사람에게 급이 있다고 믿는 동현, 속은 터져도 판을 정리하는 혜진, 이룬 건 없지만 누구보다 많이 떠들며 자기 존재를 붙드는 동만, 성공했지만 동만과의 차이를 확인해야만 안심하는 경세, 그런 동만을 그래도 진심으로 챙기는 준환, 달관한 듯 보이지만 술로 하루를 버티는 진만, 겉으론 화려하지만 비교와 결핍 속에 허한 미란, 어릴 적 유기 공포에 붙들려 아직도 그 시간 속에서 허우적대는 은아.

이들은 영화판에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회사에도 있고, 동창 모임에도 있고, 가족 안에도 있고, 어쩌면 내 안에도 있다.

#2

진만이 써대는 시는 대체로 별로 공감은 가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의 최애 대사는 결국 최종화 진만의 입에서 나왔다.

모든 스토리는
나는 존재한다는 아우성
이렇게 아프게 존재해
이렇게 슬프게 존재해
이렇게 우울하게 존재해
이렇게 웃기게 존재해
기껏해야 100년
100년이면 다 사라지는데
사라지는 것이 진정 존재했던 건가?
그런 의문을 잠재우기 위해
정신없이 스토리를 써대지
-- 모자무싸, ep.12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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