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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가장 인상 깊은 책 중 하나가 위화의 『원청』이다. 그의 전작 『인생』도 감명 깊게 읽었기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처음에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띠용?! 뭔가?! 이건 중국판 고전 퐁퐁남 스토리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당장 그렇게 읽혔다.
큰 줄기는 이렇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부유한 싱글남 린샹푸는 어느 날 외간 남녀를 집에 들이게 된다. 밤이 늦어서 하루만 묵고 가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남자는 떠났고, 여자는 남았다. 남은 여자 샤오메이와 린샹푸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실 샤오메이는 함께 왔던 남자의 부인이었다. 린샹푸를 속이고 있던 샤오메이는 어느 날 린샹푸의 금괴를 들고 남편에게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린샹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샤오메이는 다시 돌아와 아이만 낳고 또 린샹푸를 버리고 떠난다.
이 정도 2연타를 맞았으면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린샹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샤오메이가 거짓부렁으로 말한 원청이라는 곳을 찾아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지명은 찾을 수가 없었다. 모진 고초 끝에 그는 원청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시전이라는 곳에 정착한다. 혹시나 샤오메이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떠나올 때 금괴를 좀 챙겨 오긴 했지만, 낯선 타향인 그곳에서 그는 밑바닥 목수 일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는 성실했고, 착했고, 유능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시전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그곳에서도 부자가 된다. 유지이자 그 지역의 유명인이 된 것이다.
여기서 또 3연타가 기다린다. 마을을 습격한 토비들에게 납치된 친구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협상하러 가는 대표로 가 달라고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인정이 많은 린샹푸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그곳에 갔다가 그곳이 자신의 무덤이 되고 만다.
#1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만들게 된다. 내가 퐁퐁남 스토리라고 느낀 부분은 이렇다. 최초의 사기는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진했던 그는 샤오메이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금괴를 도난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찾아온 샤오메이를 여전히 믿었다. 이번에는 정착하겠지, 하며 금괴의 행방은 묻지도 않았다. 이게 도무지 나의 상식선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첫 번째 지점이었다.
2연타까지 당했다고 치자.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딸을 키우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원청을 찾아 떠난다. 이해 안 되는 두 번째 지점.
사기 지명인 원청을 찾지 못했다면 한시라도 빨리 다시 집으로 복귀할 것이지, 거기서 샤오메이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정착할 것은 아니다. 이해 안 되는 세 번째 부분.
마지막 결정타는 마을 사람들이 토비 협상 대표로 가 달라는 청을 들어준 것이다. 사실상 인정을 제외하고는 그가 토비들과 협상하러 가야 할 이유는 1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떠났고, 죽었다. 이해 안 되는 네 번째 지점.
#2
위화는 지명에도 없는 원청을 찾아 떠나서 오매불망 샤오메이를 기다리는 그를 통해 한 인간의 숭고한 인생사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퐁퐁남의 바보 같은 삽질 선택 몇 번으로 나락으로 가는 스토리로밖에 읽히지 않았다. 어렴풋이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원래 맥락이 뭔지도 알 것도 같지만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린샹푸는 행복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행복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린샹푸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린샹푸처럼 살다가 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에 그려진 그라는 캐릭터가 샤오메이를 찾아 떠나지 않았다거나, 토비와의 협상에 가지 않고 비굴하게 숨었더라면 안락하게 살다가도 최후에는 후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내가 느낀 건 그런 거였다. 사람은 저마다의 기질이 있고, 결이 있다. 거기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린샹푸처럼 숭고하게 살려고 해서도 안 될 일이고, 린샹푸 같은 사람이 나처럼 세속적으로 살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덮고 한참을 나답게 산다는 게 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린샹푸가 불행해 보이지만 그에게는 그게 가장 행복하게 살다가 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러워 하는 어떤 사람의 인생에 들어가서 내가 그처럼 산다면, 정작 나는 불행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 추구하는 것들이 있고, 결이 있다. 황새가 뱁새처럼 살아서도 안 될 일이고, 뱁새가 황새처럼 살아서도 안 될 일이다. 의외로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답게 살자’, ‘나다움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던 소설이었다. 그 결과로 나의 2026년 화두는 그게 되었다. 나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3
소설에는 내용이 조금 더 있다. 샤오메이 입장에서 전개되는 줄기다. 어떻게 보면 그런 구성은 『냉정과 열정 사이』와 비슷한 면도 있어 보였다. 실상은 샤오메이도 시대의 피해자였으며, 시전은 사실상 샤오메이가 말한 원청이 맞았고,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바로 근처에 있어고, 죄책감 때문인지 그곳에서 어이 없는 이유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어쩌면 이건 일말의 작가의 권선징악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이나 한 남자를 배신한 여자가 너무 잘 먹고 잘살면 안 되는 거였나 하는?!
이 고구마 100개 먹은 듯은 답답한 내용의 소설은 샤오메이의 선택 과정도 이해가 인되긴 매한가지였다. 나라면 남편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