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추사 김정희의 도망시

@codemaru · February 23, 2026 · 6 min read

저녁 먹으면서 볼 게 없어서 경도를 기다리며, 라는 드라마를 한 편 봤는데 거기 추사의 도망시라는 게 나왔다. 도망시가 제목인 줄 알았는데 '도망시(悼亡詩)'는 특정 시의 제목이 아니라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시'를 통칭하는 문학적 갈래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의 지극한 아내 사랑이 잘 드러나는 시인 것 같아서 가져와 보았다.

예전에 유시민 작가가 한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인간의 원초적 고독감은 감각 기관이 고립돼 있다는 데서 온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느끼는 걸 동일하게 타인이 느낄 수가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보는 파랑과 타인이 보는 파랑은 모두 다르다. 또 우리는 이해한다는 말을 하지만 타인이 느끼는 희노애락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단지 상상할 뿐이다. 결국 우리는 저마다의 감각 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저마다의 뇌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이루어진 고립된 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고 한다.

배소만처상 (配所輓妻喪)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那將月佬訟冥司 (나장월노송명사)
어찌 월하노인을 시켜 저승에 하소연하여,

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역지위)
다음 생엔 우리 부부가 서로 바꿔서 태어날까.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
나는 죽고 당신은 천 리 밖에 살아남아서,

使君知我此心悲 (사군지아차심비)
나의 이 슬픈 마음 당신이 알게 했으면.

-- Gemini 3.1 Pro

김정희는 또 그가 말년에 쓴 대팽두부라는 구절로 유명하기도 하다. 최고의 자리와 최악의 시절을 모두 겪어본 그가 하는 말이라 더 공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大烹豆腐瓜薑菜 (대팽두부과강채)
최고로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高會夫妻兒女孫 (고회부처아녀손)
최고로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 손녀가 모인 자리이다.

이 두 줄의 글귀 옆에는 추사가 덧붙인 작은 글씨(협서)가 있습니다.
"이것은 촌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비록 정승 판서가 누리는 밥상이나 삼천 명의 시녀를 거느린 귀족이라도 이 맛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 Gemini 3.1 Pro

TMI로 김정희는 일기를 쓰다, 흠영선집의 원작자인 유만주의 6촌형 유준주의 딸이 시집가서 낳은 아들이다. 유만주의 딸 진아는 추사의 6촌형 김도희에게 시집갔다. 이렇게 보면 참 스머프 마을같고, 유전자빨이란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 6촌이면 남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6촌 중에 실질적으로 아는 사람이 없다. 5촌 당숙 정도가 한계인듯. 그럼에도 유만주와 유준주는 흠영을 보면 몹시 잦은 교류가 있는 사이였다는 게 또 반전 아닌가 싶기도?!

TIM2. 김정희는 결혼을 두 번 했다. 15세에 결혼한 첫번째 부인은 20세에 먼저 떠났고, 이 시의 주인공인 두번째 부인은 23살에 결혼해서 김정희가 55살이던 해에 병으로 먼저 떠났다고 한다. 그의 다른 인생사도 기구하지만 두 부인다 먼저 떠난 부분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시에 드러난 감정이 생길 정도로 애틋한 사람을 만났던 건 행운이 아닌가 싶다. 좋은 집안에, 좋은 머리로 태어나 출세 가도를 달린 인생 전반부와 당쟁에 휘말려 귀양과 유배로 보냈던 후반부를 오버랩시켜 보면 인생사라는 게 어쩌면 총량의 법칙이 실재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한 생각이 든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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